인도에서 만난 남자 - 20부

인도에서 만난 남자 - 20부

레드코코넛 0 364

인도에서 만난 남자 20








"쑥~ 대~~ 머리~~~"






"큭큭큭.. 킥킥.. 윽윽.."






아그라포트 성벽에 앉아 케이는 창가를 한소절 "만" 부른다. 그 유명한 한소절만.




거기까지는 애교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가락이 내가 아는 흔히 대중매체를 타고 전해졌던 그 가락이 아니다.










***








"케이 그놈 은근히 얄밉지 않냐?"








"모난돌이 정 맞는다."




형오형님이 케이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 동의를 구한다.




철재형님과는 이미 교감이 형성된 양 철재형님은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여자들은 아침을 먹다 만난 노인이 보여준 향수에 정신이 팔려 자리를 뜰줄 몰랐고




참을성 없이 먼저 돌아온 우리들은 어제의 비밀회동이 있었던 루프탑에 앉아 남자들의 수다를 떤다.




케이는 잠시 일을 보러 밖에 나갔다.






수컷의 세계는 투쟁의 현장이다. 자신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존재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민주사회는 "범부"의 사회다. 군대에 다녀온 후로 몰개성과 전체주의의 패러다임은 쉬이




뛰어난 놈을 뛰어나다고 인정치 못하게 한다.








"난 멋있기만 하던데"






정우의 "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우리들의 입장에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젖비린내 나는 애기들의




의견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기각결정.






"왜 괜찮은 사람이잖아요. 언제나 당당하고. 묘하게 매력있고. 언제나 미소짓는 얼굴이 부럽던데..."






인범씨의 나름대로 "독특한" 견해다. 개인차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지. 소수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하니까.




어쨌든 기각.






"난 별로 케이에게 불만 없는데요. 가이드로서는 괜찮은편 아닌가요?"




"아저씨들이 그러면 안돼죠. 케이덕을 그렇게 보고서는. 어젯밤에도 바라나시에서도."






어이! 자네들 까지 그러면 곤란하지. 뒷다마는 같이 까줘야 제맛인데.




상황이 역전 되었다. 이들은 단체행동을 개시했다.




덩치큰 명구와 존재감 없는 재우 마저 반기를 들고 나서자 순간 어느새 우리는 질투에 휩싸인 뒷다마까기를




좋아하는 소심하고 한심스런 중년의 본보기로 둔갑했다.




우리? 아직 난 아니군. 난 아직 어떠한 의견도 표명한 적이 없으니. 뭐 속으로 생각한 것 누가 알겠어?




미묘한 대치구도에서 슬며시 친 케이파로 발을 옮기려는데 형오형님과 철재형이 나를 응시한다.




그들의 눈에는 "너는 어떤 생각이냐" 라는 의문부호가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난다.




배신자로 낙인 찍힐 것이냐 아니면 침몰하는 배에 함께 있을 것이냐.




고민 스러운 순간이다.








"케이 멋있지. 멋있는 만큼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고. 보통사람은 그런거 아닌가?"








제 삼의 길.




영국의 정치가 누가 주창했다던 그 노선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내 나름대로의 제 삼의 길"을 걷기로 했다.




리스크가 상당히 큰 도박이다.




잘하면 양쪽에서 인정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잘못되면 회색인간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판국이다.








"설마 케이라고 언제나 싱글거릴 수는 있겠어? 화장실에서 일볼때나 뭐 절정을 느낄때라든지 .."






이들에게 판단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재빨리 말을 돌려야 한다.




핀트가 안맞는건 나도 안다. 하지만 지금 이사람들의 공감대 속에 언제나 실실거리는 케이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곰곰히 고민한다. 어이 이사람들아. 그게 고민씩이나 할 일인가? 대충 웃고 넘기란 말이야.




농담이잖아. 왜 안웃어? 저질이구만.




속으로 언젠가 보았던 코미디 프로그램 대사를 쳐본다.






"케이 똥 쌀때도 싱글거려요. 노래 부르면서."






계단밑에서 은혜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은혜의 머리부터 점차로 보이기 시작한다.




생뚱맞게 끼어드는게 왠지 케이를 닮아간다.






"노래?"




"예. 사이몬 앤 가펑클요. 근데 재밌는 점은요 케이 못말리는 음치에요. 코미디에요."




"케이가?"




"기회되면 노래한번 시켜보세요. 아님 아침에 저희방에 살짝 놀러오시던가요. 케이는 매일 7시에 똥싸거든요.




아주 케이의 장은 시계에요. 시계."






별로 즐거운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상상.... 해버렸다.




아침부터. 불길하다. 가끔씩 이놈의 엉뚱한 상상력은 나의 지배를 받길 거부한다.






"근데 너 왜 왔냐?"




"아 참, 언니들이 빨리 내려 오시래요. 아그라포트 가자고."






은혜가 먼저 내려가고 우리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대충 수습하고 은혜의 뒤를 따른다.




로비를 내려가자 신문을 읽고 있는 케이가 보인다. 여자들은 케이 주위에서 시끌시끌 수다를 떨고 있고.






"장이 시계라던 케이군 아닌가?"




형오형이 짖궃게 농을 건다.




"사이몬 앤 가펑클을 좋아한다던 케이 아닌가?"




철재형님도 못지않게 농을걸며 인사를 한다.






"네 제가 장이 시계고 사이몬 앤 가펑클을 좋아하는 케이 맞습니다. 두분 설사는 좀 괜찮으신지요?




쾌차하시지 않으면 빨래하기도 힘드실 건데."






"흠흠. 덕분에"






만만찮은 케이다.




이상하게 인도에 와서 벌써 일주일째 설사를 하고 있다. 물이 안맞는건지 음식이 안맞는 건지.




참다못해 케이에게 상담을 했더니 가게에서 무슨 가루를 사다준다. 물에 타먹으라고.






"정우야~ 이것 봐 냄새 좋지? 은은한게. 연꽃향이래. 50루피 밖에 안해."




"누나 저기.. 저는 무슨 냄샌지 잘 모르겠는데요.."




"잘 맡아봐. 이거 아주 좋아."




"누나.. 저 냄새 잘 못 맡는데. 축농증이 있어서."






민경이의 인상이 약간 변한다. 자신이 산 향수가 정우에게 인정을 못 받아서인지 아니면 축농증이 있다는




정우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전자쪽에 무게가 실린다.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민경이는 주위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마이 페이스다.




쭈욱 가세요. 당신의 페이스로.








"케이 케이 나 저거 타보고 싶어요. 봐봐. 말 디게 이쁘다."






말이 끄는 수레, 마차라고 해야하나?




반항기 처자들은 마차를 보고 케이에게 저것을 타보고 싶다고 조른다.




어차피 자기들 돈 낼거면서 케이에게 왜 조르나? 거참 이해가 안가네.






"통가? 흠 이쁘다고 생각하는 동물 학대하는걸 누님들은 좋아하시나 보네요. 제법 취미가 가학적이신 걸요.




뭐 타고싶으면 타야죠,"






저 마차의 이름이 통가인가 보군.




근데 동물 학대? 원래 저놈들은 생기기를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끌도록 생겨먹은 놈이라고.








"내가 저 말대신 이 마차를 끌고싶다. 괜히 미안해지네."






뒷좌석에서 큰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우람한 철재형님의 심정이다.




내 그심정 충분히 이해가 가오. 그냥 걸어갈까?






우리는 통가라는 마차를 여섯명 일곱명으로 두대로 나누어 터고 아그라포트로 향했다.




내리막을 내려갈때는 마차를 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으나 곧이어 오랜시간동안 계속된 오르막에




낑낑거리며 힘들게 한발한발을 내딛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며 재촉하는 마부의 모습에




케이의 말이 떠올랐다.






"동물을 학대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군요."






내참. 길이 이럴줄 우리가 알았나 뭐?








****








확실히 알았다. 두번 들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형님들과 반항기 처자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렇게 잘 부른다는 사이몬 앤 가펑클 노래 한번 불러 봐"






땀을 손으로 훔치며 땡볕을 돌아다니다 본능적으로 공기의 흐름을 따라 성벽으로 다가간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절로 무릎이 굽혀지고 그렇게 퍼질러 앉아 바람을 쐬기를 어언 삼십분,




바람의 시원함은 어느정도 만끽했겠다 슬슬 무료해질 무렵 형님들이 케이에게 노래를 불러보라면 지분거린다.




처음에 거절하던 케이는 자신은 책임을 못진다며 성벽에 올라 앉아 창가를 딱 한소절만 뽑았다.




놀라웠다.




"껌뱉어"로 스타덤에 올랐던 음치 패러디 가수 이모씨는 케이에 비하면 엄청난 음치 교정과정을 거쳤음이




틀림없다. 그래 당신을 한국 최고 아니 아시아 최고의 음치로 인정합니다~아.




그러나 형님들은 그것가지고는 성이 안차나 보다.




형님들의 성화에 케이는 "표정만" 나직하게 노래를 부른다.




원래 팝송을 즐겨듣지도 않는데다가 짫은 영어 실력에 가사를 알아들을리 만무하다.






" 그 쾌활한 노래는 뭐냐? 사이몬 가펑클 노래중에서 그런 노래도 있었냐? 싱글거리는 후렴구는 또 뭐야?"




"The Boxer 요"




"혹시 잔잔하고 애절한 느낌의 그노래?"




"저도 잔잔하고 애절하게 불렀는데요?"




"그랬구나. 그랬었었구나. 미안하다."






드디어 형님들도 인정을 하고 만족을 한 눈치다. 이제 처자들도 케이에 대한 콩껍질이 좀 벗겨졌을 테지?




그러면서 여자일행들을 돌아보니 이 여자들의 눈치가 참 요상하다.




왠지 전보다 더 느끼해진 눈빛들이다.




뭐냐 동정심과 모성애가 감도는 이 분위기는?








제기랄. 케이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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